현상학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에 의해서 창시된 철학입니다. 신칸트 학파와 같이 대상을 의식 또는 사유에 의해서 구성하는 논리적 구성주의에 서지 않고, 분석철학과 달리 객관의 본질을 진실로 포착하려는 데에 철학의 중심을 두는 것이며, 경험과 의식의 구조들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상학

 





 

 

현상학

 현상학은 의식과 세계에 관해 사유되고 말해지는 기존의 모든 것을 도외시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사물들을 기존 지식으로 덮어 버리지 않으면서 사물들 자체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추구며, 현실의 것에도 스스로를 “보여 줄” 기회를 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양태를 ‘현상(Phänomen)’이라고 부름니다.

현상학의 선구자는 베른하르트 볼차노의 논리학과 프란츠 브렌타노의 심리학을 들 수 있습니다.
볼차노는 명제가 나타내는 ‘의미’는 그 진위에 상관없이 주관에서 독립하여 그 ‘자체’로 성립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브렌타노는 이와 같은 ‘객관’적인 진리의 심리학적 포착을 중심문제로 삼습니다. 그는 의식이란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점에 주의하여, 의식현상의 본질은 대상을 ‘지향’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현상학 역사

후설은 그의 철학적 경력의 초기에 수와 논리적 형식을 경험과 심적 상태로 환원하고자 한 심리주의의 노선을 따랐으나, 1900-1901년 대표 주저인 <논리연구>에서 이러한 입장을 스스로 비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나 논리적 형식, 물질 같은 객관적 대상들과 의식 사이에 중대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 그리고 의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이러한 객관적 대상들에 대한 탐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후설의 지속적인 확신이었으며, 이에 근거하여 그는 20세기 초반에 괴팅겐 대학에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현상학을 창시하기에 이른니다.

현상학은 인식 주체의 생물학적 특성, 자연의 인과적 법칙 등을 논외로 하여 순수한 의식 자체를 기술하고 그 구조를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중력의 법칙을 통해 설명할 수도 있지만, 나의 시각 경험 속에서 사과로 의식되는 무엇이 땅으로 의식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 의식 현상을 상세하게 기술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접근 방식이 실재에 관한 태도라 후자의 접근 방식은 현상학에 해당합니다. 후설은 이렇듯 순수하게 의식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론과 기본 개념들을 고안하였고, 실재 자체가 아니라 ‘실재가 주관에게 드러나는 의식 현상을 탐구’하는 이러한 관점 전환을 ‘현상학적 환원’이라 불렀습니다.

 

현상학의 개념들

♦의식의 지향성
-‘지향성(intentionality)’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 ‘intendere’에 있습니다. 이 단어는 무엇을 가리킴 혹은 무엇을 겨냥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의식이 지향성을 가진다는 말은 의식이 무엇을 표상한다는, 겨냥한다는,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말이며, 중세 철학에서부터 지향성은 꽤 중요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현상학적 의미의 지향성의 직접적 시초가 되는 것은 후설의 스승인 프란츠 브렌타노의 지향성 개념이며,후설은 의식의 지향성을 현상학이 해명해야 할 핵심적인 사태로 보았습니다. 후설의 작업의 많은 부분은 지향적 의식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다룬니다. 이러한 지향성의 해명을 통해 현상학은 의식이 지향하는 다양한 대상들에 관한 존재론과 연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상학적 환원(에포케)
-‘에포케(epoché)’는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판단 중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판단이 과도하게 치우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피론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해 왔는데, 현상학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상학의 주제인 의식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의식 그 자체를 기술하고 분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현상학적 에포케를 실행합니다.

♦노에시스와  노에마

-‘노에시스(noesis)’는 그리스어로 지식이나 지성을 의미하는 ‘누스(nous)’와 지각을 의미하는 ‘노에인(noein)’을 합성해서 만든 용어로, 의식이나 사고 자체, 더 좁게는 어떤 대상을 지향하는 의식을 가리킨니다. 반면에 ‘노에마’는 그리스어로 생각된 것을 의미하는 ‘νόημα(로마자로 옮기면 ‘noema’)’의 차용어로, 의식되거나 생각된 것, 혹은 생각의 내용으로서의 의미를 가리킨니다.

♦생활 세계

-후설이 극복하고자 한 주요 세계관은 과학혁명을 시작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자연과학을 절대화하는 과학만능주의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참된 인식은 오직 자연과학에서만 가능하며 그 외의 지식이나 관점은 무가치하다는 인식을 담은 이 세계관은 후설이 보기에 당시 유럽의 위기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었습니다.

♦상호주관성

-상호주관성은 복수의 주관, 혹은 복수의 주관의 상호관계를 일컫는 표제입니다. 1913년 <이념들 1>에서 후설이 제안한 현상학적 환원은 마치 자아 바깥의 모든 것을 없애고 자아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인상을 줌으로써, 현상학을 공허하고 유아론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였고, 후설은 이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상호주관성의 현상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