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서양 근대 철학사에서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지는 합리주의와 존 로크로부터 이어지는 경험주의를 종합하였으며,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서양 철학의 전 분야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칸트가 남긴 저작 중 3대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 유명하며,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입니다.

 

칸트

 

칸트 

칸트는 21세기의 철학에까지 영향을 준 새롭고도 폭 넓은 철학적 관점을 창조했습니다.  또한 인식론을 다룬 중요한 저서를 출간했고, 종교와 법, 역사에 관해서도 중요한 책을 썼습니다. 그의 탁월한 저서 중 하나인 《순수이성 비판》은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공격하고 있으며, 칸트 자신이 그 분야에 공헌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고, 그가 만년에 출간한 다른 주요 저서에는 윤리학을 집중적으로 다룬 《실천이성 비판》과 미학, 목적론 등을 연구한 《판단력 비판》이 있습니다.

그는 종래의 경험론 및 독단론을 극복하도록 비판철학을 수립하였습니다. 인식 및 실천의 객관적 기준을 선험적 형식에서 찾고, 사유가 존재를, 방법이 대상을 규정한다고 하였습니다. 도덕의 근거를 인과율이 지배하지 않는 선험적 자유에서 찾고, 완전히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자기 입법을 도덕률로 삼았습니다.

그는 도덕적 인격을 목표로 하면서도 자의적인 ‘한 사람의 의욕과 다른 사람의 의욕이 자유의 보편원칙에 따라 합치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법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칸트에게 내적 자유의 실현 수단인 법은 외적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도덕과 엄격히 구별되었으며, 칸트는 국가에 대해서 계약론의 입장을 취했는데, 그는 국가계약을 역사적 사실처럼 생각한 계몽기의 사상을 발전시켜서 이것을 국민주권을 위한 이론적 요청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또 칸트는 국가 간의 전쟁을 하지 않는, 영구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저술했습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생긴 문제점을 전쟁이 끝난 뒤에 조정하여 해소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제도의 내용은 국제법의 개념에 근거한 국제 연맹이어야 한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칸트 철학

칸트는 18세기 철학에 있어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평가 받습니다. 실제로 칸트 이전의 철학과 이후의 철학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은 칸트가 초감각적인 세계를 논하는 기존의 형이상학과는 다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체계를 세우려고 했으며, 그러한 체계의 근거가 되는 인식론을 연구하여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두 사상의 한계에서 벗어난 철학을 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은 인식론에 근거를 두고 이성이 이성 자신을 비판하는 철학입니다.

♦비판 철학
-칸트의 철학이 비판철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세 가지 저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연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책의 제목 끝에 붙인 ‘비판’이라는 개념은 칸트가 과거의 철학을 비판적 연구 분석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또한 칸트는 이러한 측면에서 스스로의 철학을 ‘비판철학’ 이라고 불렀습니다. 칸트가 이러한 비판 철학을 펼치게 된 데에는, 뉴턴의 자연과학과 루소의 철학, 그리고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흄의 회의를 받아들인 점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인식론
-17~18세기 철학의 인식론은 크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로 나뉘었으며,  합리주의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선험적 이성을 중시하였고, 경험주의는 인간이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얻는 귀납법을 중시하였습니다. 합리주의의 방식은 “백마는 희다”와 같이 술어가 주어의 개념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분석판단을 하므로,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경험주의의 방식은 귀납적인 방법을 강조하며 종합판단을 한 나머지 진리의 필연성을 찾는 데 한계를 드러내었습니다. 여기서 칸트는 이 두 사상을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즉,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  종합판단’ 을 긍정하였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 인식에 선험적 형식을 도입하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을 시도하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인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며, 쉽게 말하면 인간은 대상이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칸트에게 진리는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입니다.

칸트의 인식론은 감성을 통해 얻은 감각을 범주를 사용하여 지성(Verstand:오성)으로 인식하고, 초경험적인 것은 이성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감성은 어떤 물자체를 지각하는 능력이며, 범주는 이러한 감각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틀이며, 감성과 지성은 인간이 지각 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요건인 셈입니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데 시간과 공간 값이 필요하다고 보며, 구체적인 연장과 존재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인식을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 다만, 감정과 같은 것은 공간 값은 없지만 시간 값만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윤리학
-칸트는 윤리학을 연구하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는’ 도덕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을 추구하였습니다. 모두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도덕을 도덕 법칙 이라고 부르는데, 칸트 는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으며, 여기서 칸트는 인간은 마음 속에서 충동과 도덕이 투쟁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충동과 도덕 심이 투쟁을 하며,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하게 된다고 보았으며, 그렇다고 도덕이 충동을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의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떤 결과를 얻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서 명령’이 아니라, 명령 그 자체가 목적인 ‘무조건적인 명령을 도덕 법칙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칸트의 업적

근대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철학 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철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습니다.

경험론과 합리론이 치고받고 싸우던 18세기 유럽 철학계를 평정한 거인. 실제로 칸트 이전 세대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같은 경험주의론자인 여러 영국 철학자조차 자신들이 같은 학파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을 플라톤 학파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러한 학파의 구분은 칸트 이후, 정확히 말해서는 칸트에 대한 연구가 극에 달하던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와서야 정립되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 하나로 17-18세기 존재하던 모든 영국, 대륙철학자들을 단 2개의 학파로 양립시키고 그들이 대립하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한 후 이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낸 대단한 인물. 근대철학은 칸트 전과 후로 나뉜다는 얘기나 칸트를 모든 강들이 흘러 들었다가 다시 갈라져 나가는 호수로 비유한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의미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도 칸트에서부터 시작됐었습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론적 윤리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체계적인 인식론과 실천 이성 구분을 통해 그 구조를 펼쳐보였다. 칸트가 인식론뿐만 아니라 근대 윤리학의 시작을 알렸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게다가 판단력 비판을 통해 인간의 미학 인식까지 구분과 과정을 설명 시도했습니다.